자료실

칼럼니스트 이영석박사의 21세기 교수상

한국몬테소리협회  2020-05-18  조회수 : 3,517

이영석 박사님의 칼럼 내용이 회원여러분께 도움이 될것 같아 모아 봅니다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영석 

美 오리건 대학교 유아교육학 박사 

미래유아교육학회 회장 

前 (사)KMS 이사장 역임 

 

안녕하십니까 칼럼니스트 이영석입니다.

오늘은 나의 시대의 교수상과 앞으로 추구해야 할 교수상에 대해 논의해보겠습니다. 

우리시대의 교수상은 정확히는 누가 주창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세 가지 요건이 포함됩니다. 

즉, 교수적 기능, 연구적 기능, 그리고 사회봉사적 기능입니다. 이러한 교수상은 대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보편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의 교수상은 이와는 현저한 변화가 예상됩니다. 지금까지의 교수상은 중세기부터 이어져온 상아탑적인 정신이 그대로 반영되어, 사회 및 국가의 중심에 항상 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래서 교수는 사회의 문제 또는 국가의 문제에서 벗어나 있을수록 교수다운 면모를 갖는 것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세속적이고 지저분한 것들에서 멀어질수록 참교수상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더구나 대학교 숫자보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숫자가 훨씬 많아 선발적, 경쟁적 기능이 대학의 본질처럼 받아들여졌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는 대학교수의 위상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 아닌, 주변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대학교수의 자질을 만들어 간다기보다 운 좋게 대학교수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교수상의 전부의 과정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러한 시대는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학을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해 어느 대학, 어느 전공을 택하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학교의 숫자에 학생의 숫자가 훨씬 못 미칩니다. 21세기는 20세기처럼 대학에 갈만한 학생들을 골라내는 일이 아닌, 대학에 남아 있을 능력이 되는 교수들을 골라내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학생의 경쟁시대에서 교수의 경쟁시대로 그 모습이 변모하는 셈입니다. 21세기 교수상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의 소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의 능력을 따지는 시대에서 교수의 능력을 따지는 시대로 급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1세기엔 어떤 교수상이 요구될까요?

 

 첫째, 학생을 대학에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예를 들면, 탤런트, 유명스포츠인, 인기정치인, 유명작가 또는 감독, 기업체의 CEO등의 역량을 가진 자들일 것입니다. 인기가 없는 사람은 대학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일부대학에서는 연구 전담교수, 강의 전담교수 등으로 구분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수는, 그 분야의 만능 탤런트적인 자질을 갖출 것을 요구받는 셈입니다. 제 예상으로, 지금의 교수 중 이 기준을 충족하는 교수의 비율은 전체의 10%미만 정도일 것입니다. 지금 대학에서 교수직을 꿈꾸고 있는 대다수는 정확히 말해 부적격자들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대의 앞을 보지 못하고 막연하게 ‘되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준비하는 석․박사생들이 많지 않습니까? 왜 미래를 대비하여 자신을 다듬지 않고 요행만을 바라는 어리석음에 자신을 맡겨버립니까? 전 안타깝습니다! 많은 미래의 교수 재목들이 미래를 제대로 읽지 못해 도태의 길을 향해 지금도 열심히 매진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둘째, 대학에 연구비를 많이 가져올 수 있는 자입니다. 연구할 돈을 산업체 또는 국가로부터 수주할 수 있는 능력의 소지자입니다. 미래 대학은 돈을 벌 수 있는 자를 절실히 필요로 할 것입니다. 돈 없는 대학, 장학금 없는 대학, 취업이 쉽게 되지 않는 대학, 복지제도가 제대로 되지 않는 대학, 불편한 대학, 인프라가 낙후된 대학 등은 학생들이 결코 지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래는, ‘돈을 아는 사람’이 교수가 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20세기의 교수상이 ‘선비상’이었다면, 21세기 교수상은 ‘CEO’상일 것입니다. 지금도, 앞선 대학에서는 능력급제 또는 인센티브제도 등을 과감히 도입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센티브시스템이라고! 그렇다고 제가 물신주의자는 결코 아닙니다. 인센티브 제도를 잘 활용하면, 개인의 역량을 무한대로 극대화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셋째, 취업을 잘 시키는 자일 것입니다. 이론적 지식보다 실천적 지식이 우선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산․학․연 공동프로그램이 활성화되는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교수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들을 산업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교육, 산업현장의 변화요구에 능동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는 연구 중심대학이든 교육 중심대학이든 관계없이 모든 대학이 원하는 교수상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교수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자기전공분야의 현장업무에 깊은 관심과 식견을 항상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문득 어느 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학문이란 상식을 체계화 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학문이 통하는 사회인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교수상은 상식을 무시하거나 거리를 두는 것이 학자다운 태도였습니다. 사회 여론을 주도하거나 이끌어 가야 할 교수가 사회로부터 유리되는 모순을 범하고 만 것입니다. 사회에서 쓸모없는 자가 대학을 지배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이 과거의 모습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대학보다 산업체 또는 기업체가 더 많은 지적소유권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넷째, 홍보마인드 또는 브랜드이미지를 가진 자입니다. 자신이 가진 특장점들을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 역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는 20세기와 달리, 영양가로 음식을 먹기보다 맛이나 향기로 먹는 감성시대임을 알아야 합니다. 시각, 후각이 중요시되는 여성의 시대임이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빼어난 연구력과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바르게 알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결국 사회 및 국가의 지원 대상에서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자신의 연구물을 홍보할 수 있는 역량,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잘 관리하는 기술,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를 잘 디자인하여 관심을 모을 수 있는 능력 등이 요구됩니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깊은 곳에 감추어진 보고의 가치는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이는 것, 드러나는 것, 체험할 수 있는 것 등에 추구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디자인한다는 의미는 자신을 위한 개념이라기보다 타인을 위한 개념에 더 근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인조망능력을 갖춘 교수는 자신만을 위하는 교수보다 모두로부터 지지받는 비전 있는 교수가 될 것입니다. 디자인은 패션과 같아 일시적 또는 찰나적이어서 영속성이나 불변성이 없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변화하는 패러다임과 함께 할 수 없는 교수라면, 역사적 인물이지, 실존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는 후세인이 기록하는 것이지 스스로 역사적 유물로 자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상의 네 가지 21세기 교수상은 학문을 탐구하면서 염두에 두고 갈고 닦아야 할 새 덕목입니다. 물론 이러한 덕목에 선행되는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탐구분야에 대한 탁월한 전문성을 가진 자입니다. 모름지기 교수는 한결같이 이 전문성을 연마해야 합니다. 전문성 연마는 머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의해-인내와 끈기- 좌우되는 것입니다. 머리로 탐구하는 것이 기술이라면, 가슴으로 탐구하는 것을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교수상에서 가장 취약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 전문성에 대한 게으름일 것입니다. 다양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깊이 탐색하려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아주 잘못된 태도입니다. 21세기의 학문의 지식기반은 근원적으로 재탐구 되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에 필요한 정보는 20세기의 방식에 의해 얻어지거나 논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끝♥ 

 

                                                                                                                                             2009년 6월 8일 

                                                                                                                                     칼럼니스트 이영석박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