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석 칼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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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이영석 칼럼」여는 변辯.. 2008.07.03

이영석 칼럼」여는 변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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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칼럼니스터 이영석입니다.

오랜만에
지면을 통해 인사를 드립니다.
모두들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시죠!
난, 그렇게 믿습니다.

  KMS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합니다. 나는 평생을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일을 해왔습니다. 그 중심엔 항상  다음 「어린이의 다짐」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답니다. 어떤 경우든 어린이는 「정치 및 이데오르기의 대상」,「상업화의 대상」,「종교의 대상」,「성의 대상」, 그리고 「권위의 대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되며 이용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인류의 희망이자, 마지막 꿈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린이 관련분야의 학문이 성숙하고 발전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나의 소중한 인생의 대부분을 이를 위해 허우적거렸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도 이를 위해 발길질하려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의 일들은 양지의 어린이와 관련된 일들이었답니다. 음지에 머물고 있으면서 절규하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지도 손 한번 제대로 내민 적이 없었답니다.  유치원/어린이집, 교육청, 구청, 방송매체, 대학/대학교등과 같은 공교육분야에 관련된 어린이이 일들에 집중한 것이었답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누군가 하겠지 하는 핑계로, 거대한 음지의 교육적 열기와 애정을 담아내고 그것의 정상화 즉, 가치화와 문화화 하지 못한 것을 항상 가슴아파하여 왔습니다. 난, 대학교의 교사양성보다 아동교육산업체의 교사양성교육이 더 가치롭다고 보며, 교육과학부에서 개발/제공되는 어린이교구/교재보다 산업체 및 현장에서 개발되는 것들이 더 실용적이라는 생각을 품어온 것이 사실이었답니다.
 
  어느 시인은 ‘나는 새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뒤돌아보는 순간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피력하였습니다.  난, 이러한 심정으로 뒤돌아보지 않고 음지에서 미래의 국가와 세계를 위한 인재육성에 피, 땀,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분들의 반딧불이 되기를 자청합니다. 난, 손현희 가수가 부른   ’이름 없는 새‘를 좋아합니다. 난, 이름 없이 나라와 세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과 동행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영석 칼럼」의 향후 구성에 관해 말씀드리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매달 4개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게 되며, 한주에 한 토픽의 콘텐츠가 아래의 순서대로 다루어지게 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본 칼럼의 주요 타깃은 아동교육산업체 종사자, 유아교육/ 아동학/ 아동복지분야의 대학/대학교의 학부생 및 대학원생, 유치원/어린이집 종사자, 영유아기 자녀를 둔 학부모, 방송매체 및 언론매체 어린이관계자, 지방자치단체 및 교육청의 유아 및 아동교육담당자, 그리고 기타 어린이 관련자 전부가 될 것입니다.
 
첫째 주, 자기계발 및 자기역량개발 관련
둘째 주, 유아교육 관련
셋째 주, 부모교육 및 아동상담/임상 관련
넷째 주, 어린이관련 국내외 전문지식동향 및 세계적 트랜드 관련

  끝으로 『이영석 칼럼』은 정보의 전문성, 첨단성, 양질성, 정직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여러분, ‘명품공짜정보’란 신조어 들어보셨나요? 이 칼럼이 그것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참여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끝

 

 

2008 06월 27일
칼럼니스터 이영석박사

  

인기글
[공지] 칼럼 운영 방식 변경에 대한 공지입니다. 2008.12.10

안녕하세요~ KMS 회원 여러분!
이영석 칼럼에 대한 공지의 말씀을 올립니다.


현재까지는 교양;자기계발, 전공;유아교육, 실무;자녀상담, 시사;뉴트랜드 중 매주 하나의 칼럼이 업데이트 되고 이전의 칼럼들이 누적되는 방식으로 게시판을 운영하여 왔습니다. 

12월부터는 월별로 그 달의 칼럼만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
예를 들면, 12월에는 11월 이전의 글은 전부 삭제되고 12월 글만 게재됩니다.그 게재양식은 첫째 주는 교양: 자기계발, 두번째 주는 전공: 유아교육, 세번째 주는 실무: 부모교육, 그리고 네번째 주는 시사: 뉴트랜드순으로 게재됩니다. 


앞으로도 KMS '이영석 칼럼'에  지속적인 많은 관심과 사랑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인기글
[공지] 이영석칼럼 리스트(2008.7.7~ 현재) 2008.12.23


<칼럼리스트>

안녕하십니까? 독자들의 요청이 있어 지금까지 게재한 
이영석 칼럼의 게재 날짜와 제목들의 목록들을 정리하여 제시하였습니다.
다음달로 넘어가면서 자동삭제되는 칼럼들의 목록들은 이곳 리스트에 첨가될 것입니다. ^^
만일 목록의 내용을 꼭 보고싶거나 복사하고 싶은 분은 KMS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사유,
주소, 핸드폰전화를 남기시거나 혹은 KMS의 대표전화 02-3673-2030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여러분이 사랑하는 칼럼이 되도록 더욱 분발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여주신 사랑을 새해에도 변함없이 보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교양(A)

A-1 나의 잔부터 비우자!  (2008.7.7)
 
A-2 뒤태 디자인, 그 화려한 성공!!! (2008.8.4)

A-3 이 시대의 '참영웅' 들... (2008.9.1)

A-4 위기에 '기본이 된 사람'이 통한다 (2008.9.29)

A-5 나의 머무는 곳이 인생의 배움터전... (2008.10.27)

A-6 살맛나는 하루 (2008.11.24)

A-7 훈훈한 연말 만들기 (2008.12.22)

A-8 CEO의 5원소 (2009.01.19)

A-9 살기위해 변해야 한다. (2009.2.23)


전공(E)

E-1 왜! 전공이 유아교육인가? (2008.7.14)

E-2 유아교육전문가가 되려면.... (2008.8.11)

E-3 아리송한 유아교육학... (2008.9.8)

E-4 글로벌 유전인자를 기르자! (2008.10.6)

E-5 노벨인 양성은 유아교육이 적기.. (2008.11.3)

E-6 『좋은 유아교육기관』 선택 어떻게...(2008.12.1)

E-7 자연과 어린이 (2008.12.29)

E-8 유아교육의 허와 실 (2009.2.2)




실무(P)


P-1 글로벌시대의 부모역할 (2008.7.21)

P-2 부모들이여, 그대의 콤플렉스는? (2008.8.18)

P-3 「부모」잘못은 대를 잇는다! (2008.9.15)

P-4  만 2-5세아 자녀지도 이렇게!!! (2008.10.13)

P-5 「공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2008.11.10)

P-6  자녀의 황금나침판이 되자! (2008.12.08)

P-7 열린 부모와 열린 어린이 (2009.01.05)

P-8 나의 나무론 (2009.2.9)




시사(T)

T-1「변화」그 본능을 찾아서... (2008.7.28)

T-2  제품도 수업도 고객 눈에 쏙 (2008.8.25)

T-3  "로얄고객" 만들기 (2008.9.22)

T-4 「컨버전스 교육」이란? (2008.10.20)

T-5  유아교원평가 해야하나? (2008.11.17)

T-6  불안 바이러스의 확산이.. (2008.12.15)

T-7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2009.01.12)

T-8 선진국가의 기틀은 『가정보육시설』에서 (2009.2.16)



 

인기글
[공지] 이영석 칼럼 책으로 출간 예정! 2009.03.05



안녕하세요, 회원여러분! 



 이영석 칼럼 ⇒ 드디어 금년 5월 책으로 출간 예정!!!


따뜻한 봄날, KMS의 좋은 소식 하나 알려드립니다.

그동안 회원님들께서 많은 관심과 사랑 보내주셨던, KMS 이영석 칼럼이 회원님들의 요청으로 국내 유명 출판사

를 통해 5월에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현재 홈페이지에는 매달 그달의 칼럼만 게재되기 때문에 혹시라도 기

존 칼럼을 못보셨던 불들이나, 다시 한 번 칼럼을 보고자 하는 분들은 5월에 출간되는 책으로 만나보시는 것도 좋

을 듯 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유아교육에 관심 있는 분들께도 좋은 선물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동안 KMS 이영석 칼럼을 사랑해주신 독자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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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글

LIST

4 E-13 글로벌시대의 유아교육의 방향

   

글로벌시대의 유아교육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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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세상이 급변한다는 것이 실감납니다. 참세상이 여유로워졌고 넉넉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공연하게 국가원수를 비판하고 심지어 욕설까지 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전문가보다, 직접 이해당사자보다 현안문제에 대해 더 톡톡 튀는 개성의 아이디어를 내놓는 그런 세상입니다. 우리가 이런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갑자기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어린이’란 이유로, ‘여자’란 이유로, ‘노인’이란 이유로, ‘장애인’이란 이유로, 이제 그 누가 누구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일은 없으니 말입니다. 저는 혼자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민주화를 위해 눈을 먼저 감은 분들, 권위에 맞서다가 눈을 감은 분들이 다시 환생하여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무슨 생각과 무슨 느낌을 가질까?’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가장‘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저의 생각엔 겉으로는 “그러한 것 같다.” 는 것입니다.

 

 

  Ⅰ.  

 


   얼마 전 서울에 소재한 모 유명 J대학교의 P이사장님이 언론인터뷰에서 이런 포부를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대학의 학과와 전공을 전부 다 폐기하고 대학의 모든 전공분야를 전면적으로 시대에 맞게 재편하겠다는 선언을 하여 대학을 벌집처럼 쑤셔 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의 대학체제로는 기업이 원하고, 사회가 원하며, 국가가 원하는 인재를 제대로 육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뒤이어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중에서 두 번째로 영향력 있는 경기도 김 문수 지사가 “공부하지 말라는 교육부는  폐지해야한다." 라는 소신을 피력하였습니다. 이어서 그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 중앙정부가 과외수업을 단속을 하고, 어느 대통령이 과외수업을 하지 말라." 라고 하느냐며 이는 코미디감이라고 하였습니다. 공부 많이 하라는 나라는 있어도 공부하지 말라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참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터미네이터의 대명사인 배우 아널드 슈왈제네거를 기억할 것입니다. 현재 그는 캘리포니아주 주지사로 정치가의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그는 금년 9월 학기부터는 종이교과서를 전면 없애고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각국의 반응은 매우 적극적입니다. 디지털혁명이 교실에도 불어닥친 것이라며, 이제 인터넷이 명실상부한 교육의 도구시대를 여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는 등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도 머지않아 종이교과서는 사라지고 인터넷교과서시대가 열릴 것이고, 책가방무게로 허덕이던 어린이들이 더 이상 책의 무게에 신체적 고통을 감수하는 시대의 종말을 고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고요? 대한민국은 세계 제1의 인터넷 강국이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에는 이제 교육도 그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각국이 글로벌시대를 대비한 인재육성에 적극 관심을 표방하면서 교육분야 개혁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입니다.  


   세익스피어“이 세상엔 처음부터 좋고 나쁜 것은 없다. 모두 다 내가 하기 나름이다.”라고 설파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빅앤트 대표인 박서원 사장이 국제 광고상 3개 부분(칸 국제광고제에서 은사자상, 클리오 국제광고제에서 포스터 금상, 뉴욕 원쇼페스티벌에서 디자인금상과 옥외공익부분은상)을 휩쓸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그의 사무실은 현재 한국과 뉴욕에 있으며 직원은 10명에 불과합니다. 금년 31세인 박 서원 사장에게 세계최고의 광고를 만드는 비결을 묻자, 그는 “저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죠. 클라이언트(고객)가 부르면 달려가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생기면 그 아이디어에 가장 적합한 클라이언트를 찾아가서 제안을 하는 거죠. 그게 진정한 광고 회사라고 생각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전의 성공모델, 성공스토리, 성공신화, 성공전략과 전술에 의해서는 급변하는 시대와 이 시대의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오죽하였으면, 세계자동차시장의 성공신화를 이어온 세계자동차업계의 거두인 GM경영진을 향해 미국인 톰 마틴이란 블로거가 “GM이 정신 차리려면, GM경영자들이 현대차의 제네시스 쿠페를 타봐야한다.”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어서 그는 한국인도 할 수 있다면, GM도 할 수 있다면서 다음처럼 말을 이어갔습니다. “GM의 각부서장이 제네시스 쿠페를 한대씩 구입해 타보고, 뉴GM이 이런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보고서를 쓰게 하십시오. 제네시스 쿠페는 단단하고 가볍고 핸들링․ 주행성능도 경쾌합니다. 당신들이 솔직하다면, GM 차들이 조잡하고 덩치만 크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GM경영진은 제네시스 쿠페의 디자인과 끝마무리가 GM차보다 뛰어나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GM 시보레 콜벳의 내장은 부자연스럽고 값싸 보입니다. 한국인이 할 수 있다면, GM도 할 수 있습니다.”

 

 

  Ⅱ.  

 


   저는 요즘 주변에 사람들을 만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답니다. “여보시오, 꿈깨! 그리고 여보시오, 꿈꿔!”입니다. 특히 어린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린이 분야란 유아를 둔 학부모, 유아를 가르치는 유아교사 및 보육교사,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경영하는 원장, 어린이학원의 원장, 어린이관련분야의 행정가, 어린이관련전공 대학교수 및 연구원, 아동교육산업분야의 종사자, 그리고 어린이 및 부모분야의 매스미디어 종사자 등등을 말합니다. 특히 이들은 무엇보다 미래의 글로벌시대를 이끌 주역인 어린이에게 글로벌 유전인자를 배양시킬 준비된 환경을 제공할 일차적 책무가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이들이 아직도 과거의 관행이나 관습에 얶매여 그곳으로부터 벗어나오지 못한다면, 저는 단호하게 이분들에게 ‘꿈깨!’라고 말하고 싶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학부모와 아동교육분야종사자들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서초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성공인간의 배양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만 필요한, 한국에서의 최고만을 길러내는 그런 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꿈깨!‘라는 충고를 서슴없이 하려고 합니다.
 

   현시대를 사는 우리가, 미래시대를 열 책무를 가진 우리가 가장 일차적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글로벌인간을 육성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자라고 있는 어린이에게 글로벌유전인자를 습득하게 할 수 있는 환경과 자극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의 우리 모두가 이런 꿈을 꿔야한다고 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이가 뉴욕에서, 모스코바에서, 런던에서, 상하이에서, 런던에서, 베를린에서, 파리에서, 로마에서 우뚝 서서 그들의 기상과 기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글로벌리더가 되려면, 반드시 이들은 영유아기부터 글로벌지적영양소인 글로벌유전인자를 섭취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지금의 우리가 과거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글로벌 꿈을 꾸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는 어린이를 글로벌장애인으로 육성시키는 잘못을 범할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 어른세대가 꿈을 꾸어야 어린이를 위한 준비된 환경인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하루빨리 글로벌 교육메카를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일입니다. 중고등학교는 자율학교, 특목학교, 예술학교, 과학영재학교 등 글로벌교육메카로서 손색이 없는 교육기관들이 설치 운영되거나 설치를 서두르고 있답니다. 하지만, 유아교육시설이나 초등학교시설 등에서는 전혀 이러한 글로벌교육 전문메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기초학교들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있다면, 전문어학원중심의 사교육시설들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상적인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등 글로벌인간을 육성하는 최적의 메카로 평가받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유아교육분야의 경우를 예를 들어봅시다. 이미 세계적으로 글로벌조기인재교육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는 몬테소리학교라든가 가베학교가 공식적으로 한국에는 한곳도 없다는 것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몬테소리학교란 유아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박사의 교육사상과 철학에 의해 몬테소리교구에 의한 글로벌 유전인자를 배양하는 유아기 글로벌 전문교육메카입니다. 선진각국에서는 유아기의 대표적인 전문교육메카로서 몬테소리학교를 설치 운영하고 있답니다. 가베학교의 경우도 유치원의 창시자인 프뢰벨선생님이 직접 만든 가베교구를 중심으로 글로벌유전인자를 배양하는 전문교육메카로서 세계적으로 공인받는 교육기관입니다.

  둘째, 하루빨리 글로벌 전문멘토를 육성하여 현장에 배치하는 일입니다. 유아교육분야에서는 유치원교사자격증이나 보육교사자격증여부가 전문성을 보증하는 시대가 지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교사자격증시대가 전문성을 인증하는 시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사학위취득이 대학교수의 자격요건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스시대의 쇼피스트 처럼 각 분야의 최고전문지식과 최적의 현장경험을 풍부하게 갖춘 현장실천전문인을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다시 말해 개업전문의가 의대생을, 변호사가 법대생을, 오랜 연기생활을 한 연극인이 연기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그런 시대가 도래하여 온 것입니다. 특정분야의 이론에서 최고의 지혜의 소지자, 현장경험이나 실무경험 면에서 풍부한 성공사례나 성공신화를 만든 자가 전문멘토랍니다. 이들에 의해 글로벌인간이 육성되어져야할 것입니다. 유아교육분에서는 몬테소리자격증을 소지한자, 가베자격증을 소지한자, 영어몬테소리자격증이나 영어가베자격증을 소지한자가 바로 전문멘토인 것입니다. 이들의 전문멘토는 각 유아의 생애발달로드맵에 따라 각 시기유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찾아내어 그것을 최대한 육성시킬 수 있는 지혜와 기법을 소지한 자일 것입니다. 과학자의 자질, 예술가의 자질, 스포츠인의 자질, 정치인의 자질, 문학가의 자질, 경영인의 자질, 사회봉사자의 자실, 종교인의 자질, 연구자의 자질 등등을 적기에 최적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만개하게 하는 전략과 전술을 가진 자들입니다. 영유아기의 기초자질은 영유아가 누구를 만나 어떤 방향의 자극을 자주 접촉하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루빨리 글로벌 매니아가 활동할 수 있는 환경과 상황을 만드는 일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개성의 시대, 다원화의 시대입니다. 절대적 가치나 신념이 신봉되는 시대가 아니라 각자의 가치와 신념이 모두 존중되고 지지받는 시대인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공유경험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단체나 모임에 소속되거나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카페,~~ 블로그,~~ 동호회, ~~서클, ~~동아리 등입니다. 각자의 직업, 배경, 학력, 출신, 성별, 연령, 경륜등과 무관하게 공동의 관심사나 취미가 같다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어 서로의 공감대와 감성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글로벌유전인자를 배양하고 육성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글로벌동호회의 활동을 적극 기대하여봅니다. 예를 들면, 미래시대에 가장 우선되는 가치가 ‘나눔의식’이라고 한다면, 영유아기부터 기회가 닿는 대로 주변의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을 생활화하는 그런 모임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 어린이의 교육을 돕는 사회봉사단체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사실 아프리카의 경우 우리나라 돈 천 원 정도면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엄청난 큰 돈일 것입니다. 가족들이 이러한 단체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참여한다면, 정말로 글로벌 매니아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어린이는 글로벌유전인자를 배양하고 습성화하며, 나아가 그것의 성공을 위한 역량의 개발로 이어질 것입니다.

 

 

  Ⅲ.

 

  지금의 어린이는 누구와 함께 하는냐, 어디에서 살고 있는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바로 Who 와 Where의 시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일 우리의 어린이가 글로벌유전인자를 배양시켜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거나 그러한 곳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 어린이는 저절로 글로벌 유전인자를 습득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라파에 여행을 가보면, 그곳에는 나라와 민족은 있어도 국경이 없다는 것이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리고 왜 그 나라들이 하나의 EU공동국가체를 만들어 자국의 화폐를 없애고 유로화로 통일하여 하나의 경제권 하에서 사는데 불편과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에 조금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호텔방안에서 텔레비젼을 켜면, 영어방송, 독일방송, 프랑스방송, 네델란드 방송 등 동시에 4개국이상의 방송을 접하게 됩니다. 구라파에 살고 있는 영유아들은 어느 나라에 살든 어린시절부터 4개국이상의 외국어에 노출된 삶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히 이들은 글로벌 언어환경 속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구라파의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장소가 바로 글로벌언어를 힘들이지 않고 익힐 수 있는 좋은 생태적 환경을 가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가지언어와 한가지언어표현을 접하고 사는 나라는 글로벌 언어환경이 전혀 형성되어있는 곳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어린이가 글로벌언어를 생활화하려면, 이는 반드시 인위적으로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고 제공해 주어야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글로벌언어환경의 제공필요성을 인식하거나 실천하고자하는 어른이 없다면, 결국 대한민국어린이는 글로벌 언어능력을 갖지 못하는 글로벌 언어장애인으로 육성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장애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장애인도 천재아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육성되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다중지능이 필요한 다원화시대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만일 대한민국에 88올림픽이나 2002년 월드컵이 없었다면, 미국인의 대다수는 아직도 한국이 지구상에 어디에 있는지를 잘 몰랐을 것이라는 지적을 들은바 있습니다. 무척 공감이 갑니다. 만일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팀의 선수로 활약을 하지 않았다면, 영국인의 대다수는 남한과 북한을 같은 나라로 생각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이말 역시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만일 대한민국의 이명박대통령이 G20(G7을 대체한 세계20개 선진국가 대통령의 경제모임)의 의장국이 아니었다면, 한국이 선진국수준의 경제국가인줄을 아는 세계인이 많지 않을 것이고, 반 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한국이 유엔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국제적 국가임을 아는 세계인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임권택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지 않았다면, 프랑스인의 눈에는 한국인은 동물학대를 넘어 개고기를 즐겨먹는 미개인이 사는 나라, 영화와 예술이 전혀 없는 그런 나라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는 세계인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Ⅳ.

 

  이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어린이에게 글로벌 유전인자를 배양하는 자극과 환경을 만드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사는 우리 어른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세계 속에서 자란다.”라는 것을 실천하는 일에 우리 모두가 선봉에 서야할 것입니다. 우리보다 한발 짝 앞서 글로벌유전인자를 육성한 나라가 바로 우리의 코앞에 있는 일본입니다. 그들은 1960대부터 “일본에서 태어나 세계 속에서 자란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일본의 어린이들이 세계 각국을 체험하면서 자라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일본 수학여행학생들을 우린 오래전부터 봐왔고 왜 그들이 그런 경험을 하는지 제대로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일본인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어린이들을 세계 속에서 키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생활모습을 보면, 정말로 좁은 공간에서, 저런 정도 먹어도 일을 할 수 있나 할 정도로 검소한 의식주생활을 그들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경제적 여유가 아니나 글로벌여유인 것입니다. 글로벌유전인자의 필요성에 대한 그들의 의식이 그런 방향으로 어린이를 육성시키도록 실천하게 한 것입니다.

 

  저는 기회가 날때마다 글로벌 유전인자의 구성요소에 대해 다음처럼 말하여 왔습니다. 저는 글로벌유전인자의 요소에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1. 글로벌 언어

   2. 글로벌 사고

   3. 글로벌 매너  

 


 먼저, 글로벌언어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글로벌언어란 글로벌시대의 의사소통언어를 말하며, 마치 세계인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국제통화가 미국달러이며 이를 기축통화라고 하듯이, 바로 영어와 중국어를 말합니다. 앞으로 세계인은 공통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하고 당연히 이런 언어습득이 글로벌인의 필수요건입니다. 저는 이 글로벌언어가 바로 영어, 중국어, 그리고 제 3의 언어(예,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영어와 중국어는 분명 글로벌언어가 분명하다는 인식의 필요와 이를 위한 환경조성이 절대적으로 제공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외국인과 대화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발언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 그리고 외국인과 토론이나 이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 외국의 레스토랑에서 식사주문이나 길거리에서 쇼핑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 등이 만든 영어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하는 우리의 어린이가 과연 글로벌 언어소통을 습득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영어는 영어학자나 영문학자가 되는 기초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으로 구성되고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영어교육을 대학에서까지 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말입니다. 정말로 영어학이나 영문학을 전공하려면, 대학원에 가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전의 영어공부는 의사소통과 관련된 것이면 족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 EBS방송국에서 아침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하는 영어방송이 바로 제대로된 영어공부가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도 유학시절에 인사 시에 “How do you do?”, “How are you?”라고 묻고 ”I am fine, and you?“라고 대답한 적이 한번도 없었답니다. 그저 “Hi”하나로 통일된 것이었답니다. 이것이 바로 의사소통입니다. 저는 또 다른 확신 한 가지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대학의 중문학과나 중어학과 교수보다 제가 더 중국어를 더 잘 구사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고작 2년밖에 중국어를 배우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것도 주말에 하루 두 시간씩만. 지금 전화, 이메일, 의사소통, 노래 부르는데 전혀 불편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중문학과교수는 중국인과 전화통화 또는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교수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분들이 만든 교과서로 중국어공부를 한다면, 이분들이 제시한 방법대로 중국어를 습득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난해한 중국어를 몇 십년 동안 배워도 중국 현지의 식당에 가서 음식하나 제대로 주문하지 못할 것입니다. 글로벌언어는 학문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체험과 생활, 문화 속에서 익혀야합니다. 그리고 배우는 자의 내면적 필요를 불러내는 전략이 반드시 뒤따라야합니다. 박지성이나 박찬호가 훌륭한 세계적선수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운동실력이외에 의사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글로벌 사고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글로벌 사고란 바로 문제해결능력, 창의성, 그리고 논술능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글로벌시대에 어느 상황이나 여건에 대해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그 상황과 조건에 최선의 지혜를 찾아낼 수 있는 순발력이 있으며, 나아가서 누구나 공감하는 해결과정과 절차를 제시할 수 있는 결단력을 가진 자를 선호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식양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현실세계 속에서 발생하는 제반문제를 능동적, 적극적, 창의적으로 해쳐나갈 수 있는 역량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사고입니다. 현재 학교교육은 이러한 글로벌사고를 길러주는 교과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하여 각자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찾아 신입생을 선발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있는 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필요한 것은 활용할 수 없는 지식이나 공식의 기억이 아니라 불확정사태를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고력의 배양입니다. 정주영회장이 아산만 방조제 건립 시 대형유조선을 가라 앉혀 물길을 잡고 방조제를 세계최단 시일 내에 건립한 일이라든가, 미국의 한국 산업투자단이 헬리곱터를 타고 내한할 당시가 겨울이어서 잔디가 없자, 겨울에 시골보리밭의 보리를 옮겨 잔디를 만들어서 내방한 외국투자단을 격식을 갖추어 정중히 맞이하여 외화벌이를 시작한 일이나, 옥포 현대조선소의 건립을 위한 외국은행의 차관 도입시에 조선실적이 전무한 것을 보고 차관에 부정적 시각을 보인 관계자들에게 이순신장군의 거북선이 새겨진 화폐를 들이대면서, 대한민국은 몇 백년 전부터 조선사업을 생업으로 시작할 정도의 풍부한 숙련을 가진 민족이기에 화폐에까지 거북선이 등장할 정도라는 설명으로 차관을 성사시킨 그러한 글로벌사고가 앞으로 글로벌시대에 필요한 것입니다.

  

  글로벌 매너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글로벌 매너란 자원봉사능력, 사회봉사능력, 사회공헌능력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글로벌매너입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타인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겠다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의 미래는 거대한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교역을 하지 않으면, 국가번영이 힘든 여건을 가진 나라입니다. 지금도 수출해야, 수입을 해야 먹고사는 나라입니다. 다시 말해 세계와 세계인이 우리의 고객이며. 우리에게 부와 번영을 안겨주는 주체인 셈입니다. 대한민국의 부와 번영을 보장하여줄 세계와 세계인에 대한 글로벌매너의 습득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은 다양화와 다원화시대입니다. 협력, 헌신, 상생, 조력, 화합, 사랑 없이는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의 가장 핵심적 역량이 바로 글로벌매너입니다. 나의 성공보다 상대방의 성공, 나의 이익보다 상대방의 이익, 나의 행복보다 상대방의 행복을 먼저 걱정하고 염려하는 그러한 심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글로벌 습성이나 매너를 가진 사람에게 올인합니다. 그 올인의 결과가 나의 성공과 행복,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세계적 부호인 빌 게이츠가 부인과 함께 만든 자선단체를 통해 끊임없이 자선을 하는 것은 자선에서 오는 보람과 행복, 그리고 즐거움도 있지만, 더 큰 것은 가지고 있는 자신의 부와 명예를 잃지 않고 지키는 가장 큰 버팀목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부와 명예는 지키겠다’ 라고 하여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겠다는 사람들에 의해 지켜지고 유지되는 것입니다. 주위로부터, 타인으로부터 나의 부와 행복이 보호받으려면, 먼저 내가 나눔 실천운동을 습관화하거나 생활화할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끝♥

 

2009년 6월 22일

 

 

 

칼럼니스터 이 영 석 박사

인기글
2009.06.26
3 A-13 걱정이야기

   

걱정이야기

 

  

 

   A-13.JPG

Ⅰ. 걱정고리

 

 

   요즘 여기저기에서 걱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차 가진 사람은 기름값 걱정, 대학생은 등록금 걱정, 주부는 시장바구니 물가걱정, 기업주는 파업걱정, 펀드하는 자는 주가걱정, 회사원들은 구조조정걱정, 어린자녀를 둔 부모는 납치범 걱정, 그리고 정부는 북핵 걱정 등등….  이것저것 모든 걱정꺼리들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입니다. 이런 걱정은 우리 보통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린 먹을꺼리 때문에, 입을꺼리 때문에, 잠잘꺼리 때문에, 볼꺼리 때문에, 놀꺼리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아 걱정에서 눈을 뜨고 걱정에서 눈을 감는 걱정 고리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속을 떠난 수도자들도 걱정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곳 수도자의 세상에도 걱정꺼리가 꽤나 많은 가 봅니다. 불교에서는 108번뇌라 하여 108가지 걱정 방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벗어나야 비로소 그들만의 걱정세상에서 해탈한다고들 합니다. 기독교에서도 피정이 있습니다. 이 피정을 통해 그들만의 걱정세상에서 벗어나는 수도법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 이유로, 저런 사람은 저런 이유로, 그런 사람은 그런 이유로, 특별한 사람은 특별이유로 걱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걱정이 많아도 문제지만, 걱정이 없다면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익숙한 ‘걱정주제’를 갖고 독자여러분에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Ⅱ. 걱정 없는 사람도 사람인가?

 

   보통 사람들은“걱정 없는 낙원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꿈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저도 한때 이런 야무진 꿈과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답니다. 가수 이수영의 ‘얼마나 좋을까?’를 열심히 배우며 불렀던 때라고 기억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야무진 꿈을 가진 순간이 아니었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걱정이 없음은 곧 인간이기를 부정하고 비인간이 되기를 선언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자 데까르트는 참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은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그리고 또 의심하는” 행위를 한순간도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설파하였습니다. 그는 진리를 깨닫는 참 인간으로 태어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터득하는 이치도 첫걸음마가 걱정과 염려, 그리고 의심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믿으려면, 먼저 의심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데까르트의 말을 적용하면, 걱정을 벗어나려면 먼저 걱정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믿어야 진리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심의 검증과정을 철두철미하게 거친 진리가 참 진리로 얻어진다는 데까르트식의 패러독스해법인 셈입니다.

 

  걱정 없는 세상, 고민 없는 세상을 꿈꾼다면 먼저 그 걱정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이어야할 것 같습니다. 걱정 없는 삶을 원한다면, 우린 그 걱정 속에 머물고 그것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걱정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는 길을 찾게 되고, 이렇게 얻은 것이 진정한 삶의 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인 도종환씨가 어느 강연에서“시인이 울면서 쓰지 않은 시는 독자도 울면서 절대로 읽지 않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정말로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걱정 없는 세상을 원한다면, 철저한 걱정세상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걱정의 지평선 넘어 안정과 평화의 신천지로 진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혜안을 얻는 수도자들의 고행과 번뇌들은 우리 보통인에겐 바로 걱정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걱정의 근원은 ‘긍정적 욕구, 바람, 동기, 희망’에서 배아(胚芽)됩니다. 저는 한 술 더 떠 ‘걱정, 불만, 고민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즉 역사의식이나 창조의식이 없는 생물학적 존재이기를 고집하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생물학적 존재만을 갈구하였다면, 인간은 오늘날과 같은 빛나는 문명과 기술의 역사를 만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빠져 무화과를 먹지 않고 걱정 없는 낙원세상만을 고집하였다면, 지금의 인간문명의 역사와 그 진화는 이루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걱정은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거나 머물게 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의 모습, 더 진보된 미래의 발전을 위한 인류의 비전이요, 개인에겐 진화의 생명수와 같은 것입니다. 최근 일본의 동경대학교 한국계교수인 강상중교수가 펴낸 저서‘고민하는 힘’은 일본열도를 휩쓸며 작년 한 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현해탄을 건너와 한국에서까지 그 열기가 식지않고 있답니다. 강 교수는 이 저서에서 ‘삶의 원천적 에너지’가 ‘고민’즉 걱정임을 설파한 것입니다. 고민이나 걱정을 피하는 간접화법의 삶이 아닌 이 고민과 걱정과의 정면 대결하는 직접화법의 삶을 현대인에게 속속들이 들추어내어 독자들의 감성을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주변엔 이런 현상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나의 건강과 안전을 넘어 타인의 건강과 안전을 걱정하는 일, 나의 불행을 넘어 타인의 불행을 염려하는 일, 자신의 동족을 넘어 타 동족을 고민하고 염려하는 일 등등… 그런 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혹자는 자기의 눈앞도 가리기 힘든 세상에 남의 걱정과 고민에 매진하는 자를 보고 경시하거나 비아냥하는 태도를 가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린 압니다. 인간이 되는 길, 참인간이 되는 길은 인간자체를 포기할 정도의 고민, 걱정, 불만, 고통의 과정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문뜩 이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습니다. 좋은 인간의 되려면 반드시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할 것입니다.

 

 

   Ⅲ. 촛불시위와 조문행렬의 걱정

 

   사람들은 작년도의 미국 소고기촛불시위, 그리고 금년 5월의 노전대통령서거 조문행렬을 보면서, 단순한 걱정을 넘어 이상(異常)한 방향으로 정국을 몰고 가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답니다. 이런 걱정도 이해가 갑니다. 이런 걱정도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고, 행동으로 촛불시위나 조문행렬의 참여와 꼭 같은 행동걱정도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모두가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 가치와 문화의식을 가진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내면동기의 발로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적으로 걱정 없이는 결코 인간의 문명진화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절대적 존중’의 시대가 아닌 ‘상대적 존중’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학교나 대학이 사회와 정부를 이끌고 가는 중세나 근대시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 사회, 기업, 그리고 정부가 학교와 대학을 이끌어가는 초현대시대입니다. 예를 들면, 학교를 이끌어가는 것도 더 이상 교사가 아닙니다. 그 주체는 바로 학생, 학부모, 또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지방정부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경기도 김문수 지사가 정부의 사교육대책에 대한 지적에 공감을 넘어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명박정부의 청와대와 교과부가 나서서 학생과 학부모의 심야과외의 금지문제를 논의하던 시점이었습니다.“이 세상에 학생과 학부모가 자기 돈 들여 꼭 필요해서 밤늦게라도 공부하겠다고 하는 데 청와대나 정부나 나서서 하지 못하게 막는 그런 민주국가가 이 지구상에 어디에 존재한다는 말인가.”라는 지적과 아울러 교과부 폐지론을 주창하였습니다. 문명사회나 성숙한 인간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강제나 타율적으로 정하지 말고 구성원들의 자율에 맡겨서 그 원칙을 정하고 시행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지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장의 이면에는 원하고 필요한 자의 절박함이 우선되고 존중되는 그런 민의가 반영된 국정운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훈계도 깔려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김 지사의 인식은 ‘옳고, 바르며,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시민은 그 누구든 다양한 걱정을 분출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초등생의 주장도 옳고, 대학생의 생각도 옳고, 농부의 생각도 옳고, 회사원의 생각도 옳고, 주부의 생각도 옳고, 실직자의 생각도 옳고, 하급공무원의 생각도 옳고, 고급공무원의 생각도 옳고, 서민의 생각도 옳고, 지도자의 생각도 옳고 등등… 모두가 다 옳은 시대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누구 이외의 생각은 옳지 않다는 그런 권위적 발상은 청산해야 합니다. 오늘날 가장 우선되는 가치란 우리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개인의 기본권 즉 개인의 걱정일 것입니다. 개인의 기본권인 인권, 생명, 자산, 안전에 대한 걱정은 그 무엇과 대체될 수 없는 원초적 가치로 받아 들어져야 하며 이의 걱정과 고민은 문화와 가치를 지향하는 현대인의 참다운 삶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과거의 계급사회, 계층사회, 권위사회, 신분사회에서는 누구의 가치를 누구의 가치보다 우위에 두는 암묵적인 지지가 용납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그런 사회와의 단절과 청산을 위해 걱정, 고민, 불만을 넘어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훌륭히 치른 민주국민들입니다.

   아직도 권위적 발상에 젖어서 나라 일을 보살피고 국정을 살핀다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국정운영영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공산주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 그 중국이 인구 1억 2천만 명이 사는 쓰촨성에 작년 지진강도 8.2의 강진이 강타하여 쑥대밭을 만들었을 때에, 제일 먼저 원자바오 총리가 현장으로 달려가 우는 아이를 달래며, "비스킷 줄게 우유 줄게 울지 마! 아가야." 그리고 구조하는 인민해방군을 향해 "인민이 너희들을 키운 거야 이제 보답할 차례야." 하면서, 희생자 유가족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면서 고통을 분담하는 장면을 보는 이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자아내게 만들었습니다. 중국은 지진으로 쓰촨성의 일부를 잃었지만, 세계에 흩어져 사는 중국인을 하나로 엮는데 성공하였다고 평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후진타오 주석이 쓰촨성에 방문하였을 적에 최고통치자의 오랜 상징인 빨간 카펫이 깔린 모습을 보고 주변의 관계자를 호되게 야단치고 즉각 치우게 하는 등 국민 속에 지도자가 항상 함께 하는 새로운 인민지도자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국민이 선거해서 뽑은  통치자도 아닌데 말입니다.

    우리 지도자들은 선거철을 잠깐 제외하곤 항상 첩첩의 권력 인맥 띠에 겹겹이 싸여 국민의 참 소리를 듣기가 어렵고 들을 수 없으니 정말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취임 후에 당신이 만들었고 국민들은 이에 보은으로 대통령을 만들어준 그 청계천에 물이 잘 흐르는지, 그곳에서 모여 사람들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지 직접 체험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하였더라면, 취임 초에 이러한 역사상 초유의 국정난맥이란 좌초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잘 준비된 지도자로서의 풍부한 역량들을 조기에 국민을 위해 하나씩 하나씩 실천에 옮겨갈 수 있는 적기를 맞이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 말해도 들어주는 자가 없는 사회, 걱정을 해도 그 걱정을 헤아려 주는 곳이 없는 사회, 이런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의 시위요, 무언의 행진일 것입니다. 과거의 대자보문화가 그랬고, 삼보행렬이 그랬고, 분신자살이 그랬고, 지금의 촛불시위, 그리고 조문행렬도 그러한 걱정의 분출구인 셈입니다. 배후가 있든 없든, 누구의 조정을 받든 안받든 그것은 우선고려의 문제가 아니라 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자들이 바로 머슴(이대통령 국민섬기기 표현을 옮김)이 돌보고 지켜야할 신성한 국민이라는 사실입니다. 소시민이 거리를 나와 말할 것이 있다면, 그전에 먼저 알고 나오지 않아도 되게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이 머슴의 몫이고, 머슴도 사람이라 잠시 한 눈판사이에 신성한 주인의 요구를 잠시 귀 기울지 못하였다면, 중국의 원자바오처럼 버선발로 뛰어나와 읍소하고 무조건 그 청을 수용하는 것이 머슴이 주인에 대한 기본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우리의 머슴들은 할말이  많이 남아있고  우리국민이 알지 못하는 국제관례 등의 핑계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넘어가려는 안이한 발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재협상보다 국제관례가 그만큼 국민의 안녕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이었다면, 국제전문가들을 총동원하여 땀과 눈물을 다해 소시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일을 한결같이 했어야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것이 국민의 안녕과 국익을 위한 최선책이라 서둘러 했는데 국민이 원치 않으니 제가 한 것은 국민의 안위를 위한 것 같지 않다.” 라고 왜 말 못하는 지 답답할 뿐입니다.

 

 

    Ⅳ. 걱정의 본질이란?

 

   걱정이란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움”이란 심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학자들은 적절한 걱정은 문제해결이나 과업성취에 효과적이라 말합니다. 한 가지 예로 시험에 대한 걱정은 시험 준비 태도를 강화하여 원하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걱정과 고민은 불안과 다르고 공포와 정신장애와 전혀 다른 성질입니다. 물론 걱정이 지나쳐 공포장애, 강박장애, 범 불안장애 등은 병리적, 심리적 장애를 가진 이상성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답니다. 기름값 걱정을 하고, 소고기 걱정을 하고, 등록금 걱정을 하는 것은 좋은 신랑을 갖겠다는 꿈이나 좋은 직장에 다니겠다는 꿈과 거의 대등 소이한 건강한 심리적 욕구 메커니즘에서 나온 바람입니다.

   걱정이 너무 많거나 상습적인 걱정불안을 가진 경우에는 여러 가지 병리적 장애현상을 수반하지만, 일상적인 수준의 걱정을 갖는 것은 여러 장점들을 가집니다. 일에 대한 주의집중력을 높일 수 있고, 주변의 문제 상황이나 위협상황을 민감하게 포착하거나 주시할 수 있고, 나아가서  목표달성을 위한 추진력을 높일 수 있게 됩니다. 누구든 현대인은 걱정이 끈을 잡고 살기 마련입니다. 개인의 걱정이든, 가정의 걱정이든, 직장의 걱정이든, 나라의 걱정이든, 날씨의 걱정이든, 그 무엇에 관한 걱정이든 한시도 걱정의 끈을 놓고 살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개인이나 가정의 걱정보다 직장/나라의 걱정, 직접적인 연관이 낮은 이국나라의 기아, 인권, 평화 걱정을 하는 것은 한 단계 성숙된 현대인의 글로벌 덕목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인을 걱정하는 선교활동, 북한어린이의 기아를 걱정하는 모금활동, 철부지어린이의 광우병을 걱정하는 촛불시위, 내 부모가 아니지만 국가를 5년 동안 통치한 지도자의 불행한 서거를 슬퍼하는 조문행렬 등등… 이 모든 걱정들은 범 인류애적인 박애걱정에서 나온 신성한 인간됨을 위한 행위인 것입니다.

 

 

   Ⅴ. 걱정은 현대인의 문화와 가치의 동인

 

  나의 후배이자 동료교수이었던 부산대학교 L교수는 사회단체법인인 ‘어린이를 걱정하는 모임’을 설립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간 성공적 운영을 한 적이 있었답니다. 얼마나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어린이에 대한 학습권리, 행복권리, 놀이권리, 안전/위생권리, 생명존중권리 등을 등한시 하였기에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자세히 우리사회의 이모저모를 면면히 살펴보면, 아동학대, 아동폭력, 걸식아동, 버려진 아동, 심신장애아동, 불우아동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이들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잘못된 이탈사고와 행동을 가진 자가 아니라 고도의 성숙된 인격을 소지한 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걱정은 바로 현대인의 핵심적 정신인 문화와 가치의식의 발로이며, 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어린이가 촛불시위를 가로막는 전경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현상 그 자체 보다 더 우위의 가치는 그 초등학생이 자기의 문제를 넘어 타인의 문제, 그것도 미래 대한민국에 살게 될 사람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산 교육의 계기로 성찰해 볼 수 있는 여유와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편리함이나 귀찮아함을 포기하고 나 이외의 타인의 문제나 일에 관심과 걱정을 갖는 경험을 갖는 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일이 아닌 타인을 염려하는 마음, 나아가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은 분명히 큰마음에서 연유한 행보임에 틀림없답니다. 이러한 큰마음은 많이 배운 자, 가진 자, 신분이 있는 자, 경륜이 있는 자, 나이든 자, 고급관직을 가진 자 등으로 부터 술술 나와야하는데 그동안의 관례를 보면, 이들로 부터는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흘린 피, 땀, 눈물의 대가를 줍거나 평가하는 일들에만 연연하여 왔습니다.

   사실 그동안의 관례를 보면, 갖지 않은 자들, 소외한 자들로 부터 시대가 원하는 큰 마음들이 나왔고 그 마음들이 이루어졌음을 부정할 수 없답니다. 우린 누가 국민과 나라를 염려하는 가를 따지기보다 이들 큰마음을 가진 모든 이를 귀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여기고 이들의 걱정들을 경청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최고 지도자는 가신이나 심복, 정보기관, 신문이나 공중파TV 뉴스 등에만 귀를 열고 의존해서는 결코 ‘살아있고 숨쉬는 걱정’에 접할 수 없다고 봅니다. 기억하지 않습니까. 평가는 상이하지만, 위기의 국가를 총칼을 앞세워 정권을 장악하였지만 역대지도자중 가장 국정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J전직대통령은 시간 나는 대로 청와대의 춘추관 앞마당에 막걸리 통을 내다놓고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수시로 불러 막걸리 잔을 기울면서‘살아있는 걱정’을 진정으로 경청하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떠오릅니다.
    

  걱정 없이 살 수 없는 현대인에게 잠시나마 찌든 걱정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더 건설적인 걱정을 많이 갖기 위해서 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내한공연을 한 적이 있는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의 “Don't worry be happy" 음악을 시간이 나면 한번쯤 들어볼 것을 독자여러분에게 권합니다. 그는 그래미상 등 주요수상경력이 10차례나 됩니다. 국내 팬들에겐 요요 마와 함께한 앨범 ‘허쉬’로 유명합니다. 기회가 되면 그의 음악을 감상하면서 잠시나마 이런 저런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유와 명상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가사의 내용은 “살다가 보면 이런 저런 걱정꺼리 밀린 월세를 내지 못해, 여자친구가 없어, 카드 빚을 갚지 못해,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해 연이은 걱정을 안고 살지만, 이것이 우리의 삶이며 인생이니, 걱정하지 말고 행복해지자 즉, Don't worry be happy."라는 것입니다. 이번 한주만이라도 ‘생각하는 로댕’이 아니라 ‘걱정하는 로댕’이 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끝♥


2009년 6월 15일

 

 

 


칼럼니스트 이 영 석 박사

인기글
2009.06.19
2 T-12 21세기 교수상

  

21세기 교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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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나의 시대의 교수상과 앞으로 추구해야 할 교수상에 대해 논의해보겠습니다. 우리시대의 교수상은 정확히는 누가 주창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세 가지 요건이 포함됩니다. 즉, 교수적 기능, 연구적 기능, 그리고 사회봉사적 기능입니다. 이러한 교수상은 대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보편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의 교수상은 이와는 현저한 변화가 예상됩니다. 지금까지의 교수상은 중세기부터 이어져온 상아탑적인 정신이 그대로 반영되어, 사회 및 국가의 중심에 항상 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래서 교수는 사회의 문제 또는 국가의 문제에서 벗어나 있을수록 교수다운 면모를 갖는 것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세속적이고 지저분한 것들에서 멀어질수록 참교수상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더구나 대학교 숫자보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숫자가 훨씬 많아 선발적, 경쟁적 기능이 대학의 본질처럼 받아들여졌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는 대학교수의 위상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 아닌, 주변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대학교수의 자질을 만들어 간다기보다 운 좋게 대학교수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교수상의 전부의 과정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러한 시대는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학을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해 어느 대학, 어느 전공을 택하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학교의 숫자에 학생의 숫자가 훨씬 못 미칩니다. 21세기는 20세기처럼 대학에 갈만한 학생들을 골라내는 일이 아닌, 대학에 남아 있을 능력이 되는 교수들을 골라내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학생의 경쟁시대에서 교수의 경쟁시대로 그 모습이 변모하는 셈입니다. 21세기 교수상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의 소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의 능력을 따지는 시대에서 교수의 능력을 따지는 시대로 급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1세기엔 어떤 교수상이 요구될까요?

 

 첫째, 학생을 대학에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예를 들면, 탤런트, 유명스포츠인, 인기정치인, 유명작가 또는 감독, 기업체의 CEO등의 역량을 가진 자들일 것입니다. 인기가 없는 사람은 대학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일부대학에서는 연구 전담교수, 강의 전담교수 등으로 구분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수는, 그 분야의 만능 탤런트적인 자질을 갖출 것을 요구받는 셈입니다. 제 예상으로, 지금의 교수 중 이 기준을 충족하는 교수의 비율은 전체의 10%미만 정도일 것입니다. 지금 대학에서 교수직을 꿈꾸고 있는 대다수는 정확히 말해 부적격자들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대의 앞을 보지 못하고 막연하게 ‘되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준비하는 석․박사생들이 많지 않습니까? 왜 미래를 대비하여 자신을 다듬지 않고 요행만을 바라는 어리석음에 자신을 맡겨버립니까? 전 안타깝습니다! 많은 미래의 교수 재목들이 미래를 제대로 읽지 못해 도태의 길을 향해 지금도 열심히 매진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둘째, 대학에 연구비를 많이 가져올 수 있는 자입니다. 연구할 돈을 산업체 또는 국가로부터 수주할 수 있는 능력의 소지자입니다. 미래 대학은 돈을 벌 수 있는 자를 절실히 필요로 할 것입니다. 돈 없는 대학, 장학금 없는 대학, 취업이 쉽게 되지 않는 대학, 복지제도가 제대로 되지 않는 대학, 불편한 대학, 인프라가 낙후된 대학 등은 학생들이 결코 지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래는, ‘돈을 아는 사람’이 교수가 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20세기의 교수상이 ‘선비상’이었다면, 21세기 교수상은 ‘CEO’상일 것입니다. 지금도, 앞선 대학에서는 능력급제 또는 인센티브제도 등을 과감히 도입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센티브시스템이라고! 그렇다고 제가 물신주의자는 결코 아닙니다. 인센티브 제도를 잘 활용하면, 개인의 역량을 무한대로 극대화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셋째, 취업을 잘 시키는 자일 것입니다. 이론적 지식보다 실천적 지식이 우선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산․학․연 공동프로그램이 활성화되는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교수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들을 산업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교육, 산업현장의 변화요구에 능동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는 연구 중심대학이든 교육 중심대학이든 관계없이 모든 대학이 원하는 교수상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교수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자기전공분야의 현장업무에 깊은 관심과 식견을 항상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문득 어느 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학문이란 상식을 체계화 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학문이 통하는 사회인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교수상은 상식을 무시하거나 거리를 두는 것이 학자다운 태도였습니다. 사회 여론을 주도하거나 이끌어 가야 할 교수가 사회로부터 유리되는 모순을 범하고 만 것입니다. 사회에서 쓸모없는 자가 대학을 지배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이 과거의 모습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대학보다 산업체 또는 기업체가 더 많은 지적소유권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넷째, 홍보마인드 또는 브랜드이미지를 가진 자입니다. 자신이 가진 특장점들을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 역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는 20세기와 달리, 영양가로 음식을 먹기보다 맛이나 향기로 먹는 감성시대임을 알아야 합니다. 시각, 후각이 중요시되는 여성의 시대임이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빼어난 연구력과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바르게 알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결국 사회 및 국가의 지원 대상에서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자신의 연구물을 홍보할 수 있는 역량,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잘 관리하는 기술,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를 잘 디자인하여 관심을 모을 수 있는 능력 등이 요구됩니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깊은 곳에 감추어진 보고의 가치는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이는 것, 드러나는 것, 체험할 수 있는 것 등에 추구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디자인한다는 의미는 자신을 위한 개념이라기보다 타인을 위한 개념에 더 근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인조망능력을 갖춘 교수는 자신만을 위하는 교수보다 모두로부터 지지받는 비전 있는 교수가 될 것입니다. 디자인은 패션과 같아 일시적 또는 찰나적이어서 영속성이나 불변성이 없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변화하는 패러다임과 함께 할 수 없는 교수라면, 역사적 인물이지, 실존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는 후세인이 기록하는 것이지 스스로 역사적 유물로 자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상의 네 가지 21세기 교수상은 학문을 탐구하면서 염두에 두고 갈고 닦아야 할 새 덕목입니다. 물론 이러한 덕목에 선행되는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탐구분야에 대한 탁월한 전문성을 가진 자입니다. 모름지기 교수는 한결같이 이 전문성을 연마해야 합니다. 전문성 연마는 머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의해-인내와 끈기- 좌우되는 것입니다. 머리로 탐구하는 것이 기술이라면, 가슴으로 탐구하는 것을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교수상에서 가장 취약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 전문성에 대한 게으름일 것입니다. 다양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깊이 탐색하려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아주 잘못된 태도입니다. 21세기의 학문의 지식기반은 근원적으로 재탐구 되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에 필요한 정보는 20세기의 방식에 의해 얻어지거나 논의 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끝♥



   2009년 6월 8일

 

 

 

   
칼럼니스트 이 영석 박사

인기글
2009.06.10

「이영석 칼럼」여는 변辯..

2008.07.03

이영석 칼럼」여는 변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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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칼럼니스터 이영석입니다.

오랜만에
지면을 통해 인사를 드립니다.
모두들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시죠!
난, 그렇게 믿습니다.

  KMS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합니다. 나는 평생을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일을 해왔습니다. 그 중심엔 항상  다음 「어린이의 다짐」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답니다. 어떤 경우든 어린이는 「정치 및 이데오르기의 대상」,「상업화의 대상」,「종교의 대상」,「성의 대상」, 그리고 「권위의 대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되며 이용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인류의 희망이자, 마지막 꿈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린이 관련분야의 학문이 성숙하고 발전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나의 소중한 인생의 대부분을 이를 위해 허우적거렸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도 이를 위해 발길질하려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의 일들은 양지의 어린이와 관련된 일들이었답니다. 음지에 머물고 있으면서 절규하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지도 손 한번 제대로 내민 적이 없었답니다.  유치원/어린이집, 교육청, 구청, 방송매체, 대학/대학교등과 같은 공교육분야에 관련된 어린이이 일들에 집중한 것이었답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누군가 하겠지 하는 핑계로, 거대한 음지의 교육적 열기와 애정을 담아내고 그것의 정상화 즉, 가치화와 문화화 하지 못한 것을 항상 가슴아파하여 왔습니다. 난, 대학교의 교사양성보다 아동교육산업체의 교사양성교육이 더 가치롭다고 보며, 교육과학부에서 개발/제공되는 어린이교구/교재보다 산업체 및 현장에서 개발되는 것들이 더 실용적이라는 생각을 품어온 것이 사실이었답니다.
 
  어느 시인은 ‘나는 새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뒤돌아보는 순간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피력하였습니다.  난, 이러한 심정으로 뒤돌아보지 않고 음지에서 미래의 국가와 세계를 위한 인재육성에 피, 땀,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분들의 반딧불이 되기를 자청합니다. 난, 손현희 가수가 부른   ’이름 없는 새‘를 좋아합니다. 난, 이름 없이 나라와 세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과 동행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영석 칼럼」의 향후 구성에 관해 말씀드리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매달 4개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게 되며, 한주에 한 토픽의 콘텐츠가 아래의 순서대로 다루어지게 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본 칼럼의 주요 타깃은 아동교육산업체 종사자, 유아교육/ 아동학/ 아동복지분야의 대학/대학교의 학부생 및 대학원생, 유치원/어린이집 종사자, 영유아기 자녀를 둔 학부모, 방송매체 및 언론매체 어린이관계자, 지방자치단체 및 교육청의 유아 및 아동교육담당자, 그리고 기타 어린이 관련자 전부가 될 것입니다.
 
첫째 주, 자기계발 및 자기역량개발 관련
둘째 주, 유아교육 관련
셋째 주, 부모교육 및 아동상담/임상 관련
넷째 주, 어린이관련 국내외 전문지식동향 및 세계적 트랜드 관련

  끝으로 『이영석 칼럼』은 정보의 전문성, 첨단성, 양질성, 정직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여러분, ‘명품공짜정보’란 신조어 들어보셨나요? 이 칼럼이 그것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참여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끝

 

 

2008 06월 27일
칼럼니스터 이영석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