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5
참다운 조기교육의 이해

본 글월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유아교육분야에서 만5세의 초등학교 조기입학허용여부가 세상의 핫이슈로 등장하고 있을 무렵인 1989년 새해벽두에 월간잡지 홈토피아 1월호에 게재한 글월을 그대로 옮겨본 것입니다. 20년 전과 비교한 지금의 참다운 조기교육의 이해가 그 당시와 비교하여 보았을 때 질적, 양적인 면에서 진화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강하게 갖게 합니다. 그 의구심이 더 깊어짐을 감출수도 없답니다.
Ⅰ. 참다운 조기교육은 무엇일까?
요즘 유아교육계주변에서는 교육개혁심의위원회가 내놓은 만5세아 초등학교 조기입학허용 안에 대한 찬반여론이 비등해져가고 있답니다. 찬성하는 쪽은 만5세 아가 과거에 비해 많이 똑똑해졌으며, 초등학교 1학년에 수학할 정도의 학습준비능력도 갖추었고, 그리고 세계적인 학제하향화추세(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낮추는 경향)등을 그 이유들로 들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대하는 쪽은 “이 땅의 만5세 아를 불행하게 해야 하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안은 유아교육이나 조기교육의 참 개념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비전문가 집단에 의해 졸속하게 내놓은 탁상공론 발상임을 지적하였답니다. 지금과 같은 암기식, 주입식, 획일적 초등학교 학습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만5세 아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 이시기 유아의 심성발육의 바탕을 망가뜨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부각시켰습니다. 이를 계기로 참다운 조기교육이 무엇이며, 그 방향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정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학부모, 교육정책입안자, 유아교육종사자, 그리고 유아교육전문가간에 활발하게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저는 당시에 본 글월을 통해 전문가로서 개인적 입장을 피력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취지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적에 무엇이 유아교육이며, 어떤 길이 유아교육의 고유한 정신에 부합하느냐가 그 정책결정의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느 쪽 입장을 지지하는냐는 중요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점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없는 저의 소신이기도 합니다.
Ⅱ. 5세 이전에 인생바탕이 결정된다.
“세살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라는 우리속담이 있습니다. 유아교육의 성격이 이 속담과 유사하다고 봅니다. 발달심리학자들은 한결같이 유아기 경험은 후기경험의 결정적 영향을 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전문용어로 결정적시기(critical period)로 표현되며, 유아기가 바로 인생의 결정적시가라는 것입니다. 결정적시기란 인생발달과정 중에 어떤 특정발달시점에 특정발달과업을 위한 최적 민감 시기가 있으며, 이시기에 그 발달을 위한 적정한 자극이나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면 그 발달은 지체되거나 중지된다는 것입니다. 후기에 지체된 발달복원을 위한 수많은 노력은 그 실효를 제대로 거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발달심리학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0~5세 사이에 성인지능의 50%가 발달하며, 2~3세경에 언어획득의 기초가 마련되고, 0~2세경에 정서분화 및 표현, 부모-자녀간의 애착형성, 체중․신장․두뇌등과 같은 신체발달의 70%정도가 발달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인생의 기초역량이 유아기에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반 발달의 기초가 다듬어지는 시기일 뿐만 아니라 외부자극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며, 조금이라도 강한 자극이나 억압이 제공되면 쉽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시기의 발달적 예민성이나 민감성을 무시한 무리한 요구나 강요는 이시기 발달의 촉진은 커녕 오히려 지체를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데이비드 엘킨드(David Elkind)와 같은 학자는 유아교육의 정의로 '어린이에게 해가되지 않는 짓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가장 바람직한 참 유아교육이란 유아의 입장에서서 유아의 요구, 관심, 생각, 느낌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이에 기초하여 유아의 발달을 자극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엄마와 유아가 동네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른다고 합시다. 엄마와 유아가 볼 수 있는 슈퍼마켓의 물건들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시력도 오히려 유아가 엄마보다 더 좋아 더 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보는 방식, 생각방식, 느끼는 방식에서의 유아와 엄마간의 차이일 것입니다. 엄마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의 구매뿐만 아니라 가족이 원하는 물건들까지도 꼼꼼히 챙긴다면, 유아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들만 겨우 챙길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엄마는 6kg중량의 물건을 들고 나올 수 있지만, 유아는 고작 600g중량만 운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유아에게 부모가 가족이 원하는 물건들을 구매하게 한다든가 6kg중량의 물건을 운반하게 한다면, 이는 슈퍼마켓에 대한 유아의 호기심과 관심을 상실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나아가서 쇼핑이나 구매행동 더 나아가서 경제활동에 대한 무관심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개천이 모여 냇물이 되고 냇물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대양을 이루는 이치와 같습니다. 단한번의 잘못된 유아에 대한 무리한 요구나 강요가 인생에 반드시 알아야할 거대한 중요정보를 단절하게 만드는 계기기 된다는 점 말 입니다.
Ⅲ.비료가 지나치면 성장이 중지됩니다.
다음은 제가 좋아하는 어느 유아교육학자의 글월입니다. 여러분도 저만큼 다음의 글월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교사라고 생각하니까 가르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너무 가르치면 비료가 지나쳤을 때와 같이 성장이 중지됩니다. 비료는 조금만 줘도 됩니다. 나머지는 물과 햇빛입니다. 식물이 물을 제대로 빨아올리고 일광을 받으면 스스로 동화작용을 합니다. 교사의 역할은 어떤 의미에서는 의사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에게는 성장하려는 힘이 많기 때문에 마음의 병이나 신체의 병이나 하여간 병에만 주의를 하면 자연히 자랍니다. 빨리 꽃을 피우려고 꽃 봉우리를 벌려서는 안 됩니다. 주위의 공기를 따뜻하게 해주면 꽃 봉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핍니다. 유아교육이란 주위의 공기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닐까요.』
위의 글월이 말하고자 하는 취지는 이러합니다.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교육활동이 불필요하고 무용하다는 지적보다는 유아의 욕구, 관심, 발달을 고려하지 않은 맹목적인 교육이 갖는 맹점을 힐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유아에게 몰아붙이기식의 교육에 대한 부정적 효과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획없는 교육, 준비없는 환경, 체계없는 교사 등에 의해 일어나는 교육은 설사 그것이 유아의 욕구와 발달을 최적하게 고려하였다고 하더러도 교육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196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한참 유아교육진흥운동이 거국적으로 진행되는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아마 독자 여러분은 이 운동을 헤드스타트(Headstart)운동으로 기억하실 것입니다(대한민국의 경우, 제5공화국출범직후 1981년 유아교육진흥법에 의한 새마을유아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헤드스타트 운동과 유사한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조기교육육성운동입니다.). 이 당시에 스위스의 세계적 인지심리학자인 쟌 삐아제(Jean Piaget)가 미국을 방문하였답니다. 당시의 미국의 교육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한결같이 삐아제에게 『조기에 지능개발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에 대해 삐아제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고양이는 대상영속성의 개념(예, 숨겨져 있는 음식을 찾는 능력, 또는 사라진 물건을 찾아내려는 능력 등)을 생후 3개월경에 획득하지만, 우리인간은 생후 9개월 또는 12개월경쯤 되어서야 획득한답니다. 그렇지만 신생아의 지능은 계속적으로 무한히 발달하지만, 고양이의 지능은 더 이상 발달하지 않는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생아를 고양이처럼 일찍 대상영속성개념을 획득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한다는 말입니까?』라고 반문하였답니다. 삐아제가 우리에게 주고자하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그 답은 그의 수제자의 하나인 하바드대학교의 덕워즈(Duckworth)박사의 “광활한 평야의 논 한 평을 비옥하게 만든다고 하여 전체 평야가 비옥하게 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말속에 잘 나타나있다고 보겠습니다.
세계에서 2등하라고하면 서러워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대단합니다. 가족 중에 입시생한명 두면, 전 가족이 수험생이 되어버리고, 좋은 학군을 찾아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하며, 좋은 유치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밤샘 줄서야하는 대한민국입니다. 자식 때문에 울고 웃고 행복하고 죽고 싶은 그런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앞서가는 어른들의 욕심과 기대가 반드시 건강하고 안전하며 유익하다고만 할 수없음을 반드시 알아야할 시대가 서서히 도래하여 오고있는 것입니다.
Ⅳ. 조기교육은 인간교육이다.
부모들 사이에만 통하는 신조어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 삼종지도(新三從之道)’입니다. 원래 삼종지도의 의미는 아버지에 대한 복종, 남편에 대한 복종, 자식에 대한 복종이었는데, 현대판 신 삼종지도란 젊어서는 남편에게 복종, 중년에는 자식에게 복종, 그리고 늙어서는 손자에게 복종한다는 것을 두고 일컬음입니다. 부모가 무조건 자식에 대한 맹목적 헌신이나 희생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회자한 신조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과 노력 그 자체를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방향과 목적의 진정성을 살펴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머리 좋은 민족으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워하는 대한민국이 얼마 전에 수학올림피아드에서 22위를 차지하여 자존심을 구긴 일이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학과목에 그토록 목숨을 거는 나라인 대한민국은 22위를 하였고, 오히려 별반 수학과목에 치중하지 않는 미국이 6위를 한 것입니다. 이 대목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수학과목을 입시라는 전투를 앞둔 전투과목으로 다룬다면, 미국의 경우는 수학에 대한 호기심, 탐구심, 일상생활과의 관련성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등 차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수학과 생활, 수학과 인생과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에서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기위해, 일등하기위해, 일류대학입학을 위해 맹목적으로 난해한 공식과 계산과정 그리고 문제풀이과정을 통째로 외워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수학은 삼라만상의 복잡한 사건이나 사상들을 간단, 명료하고 질서정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것으로 수학을 탐구하게 하였다면, 대한민국의 수학올림피아드의 성적은 22위가 아닌 세계최고가 되었을 것이고 기능올림픽의 연패처럼 계속하여 연패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참다운 조기교육이란 목표지점에 빨리 도달하게 하게 하는 지름길을 안내하는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보다는 각자의 취향과 성향에 맞는 여행경로를 선택하고 각자가 선호하는 일정과 고장을 경험하게 하며, 나아가서 스스로가 목표의 방향과 내용까지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성균유아원 원장으로 재직할 당시에 경험한 어느 유아의 사례입니다. 이 유아는 다른 일상활동이나 영역활동에는 매사가 적극적이고 모범적인 주도적 활동을 보여 또래유아들이나 교사의 따사한 시선을 받는 유아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미술활동시간이 되면 문제행동을 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작업을 방해하거나 심지어 미술도구 등을 마구 집어던지는 등의 이탈행동을 서슴없이 보였답니다. 이 유아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그 원인을 찾던 중에 다음과 같은 귀중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이는 이유아부모와의 면담과정을 통해 얻어졌답니다. 이 유아의 부모는 자신의 학창시절에 미술적성부족으로 인해 꺾어야만 하였던 고충을 자신의 자녀에게만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의식을 갖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그것이 유아가 원하지 않은 시점, 흥미를 보이지 않는 시점, 일상유아들보다 이른 시점에 미술학원에 자녀를 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이든 아이들과의 미술학원생활이 유아에게 큰 심리적 압박이 되었고, 나이든 아이들에 비해 자신의 미술작업의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감등에 항상 시달려야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유아가 적응하기 힘든 틀에 박힌 미술학원생활이 미술자체에 대한 싫증과 짜증으로 연결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유아의 미술실기역량은 미술학원에서의 조기교육덕택으로 또래유아들 중에서 최상위급의 미술작업수준을 소지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미술 그 자체, 미술 작업 그 자체, 미술시간 그 자체가 맹목적으로 이 유아를 짜증나게 만들고 이탈행동을 촉발하게 만들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안 저는 이 유아에게 한 가지 시도를 하여보았습니다. 원장실에 이 유아를 불려서 이 유아에게 “집안에 있는 개와 고양이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만나면 서로 싸운단다. 너가 생각하기에 고양이와 개가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그림으로 그려서 나에게 보여줄 수 있겠니?”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이 유아는 고양이와 개가 서로 만나지 않도록 기차 길의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그림을 그것도 크레파스를 사용하여 멋지게 묘사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유아의 작품입니까? 그렇습니다. 미술활동이란 꼭 미술영역에서만, 꼭 미술시간에서만, 꼭 미술학원에만 그 활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Ⅴ. 유치원과 학원을 혼돈하지 말자.
제가 평소에 존경하는 K장학관은 대한민국 부모만큼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웅변학원 등을 좋아하는 나라도 드문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아트니스트, 정치가가 없다는 것이 참 이상스럽다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저 역시 왜 대한민국 부모들은 학원을 그토록 선호하는지 그 정확한 이유를 알 길이 없습니다. 유아교육현장에서 30년 넘게 헌신한 원로 유치원원장이 토로한 말이 귓가에 쨍하고 울립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슬프게 하는 일은 원에 잘 다니는 유아를 학원에 보내기위해 원을 그만두게 하는 순간이라고 토로하였습니다. 하지만 학부모의 입장도 이해하여 주어야합니다. 일년 넘게 꼬박꼬박 원비를 내고 원에서 하자는 대로 토하나 달지 않고 다 따라하였건만, 아직도 어느 행동하나 반듯하게 변화된 것 없고, 읽고 쓰고 셈하는 것 하나 반듯하게 하는 것이 없는 유아를 보면서 과연 이 원이 교육을 하는 곳인가라는 의문을 갖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가 원하는 것은 행동변화입니다. 원장이 원하는 것은 바로 심성변화입니다. 바로 여기에 참 유아교육의 해답의 길이 있다고 봅니다. 원장의 생각은 심성변화가 먼저 일어나야 참다운 행동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고, 부모는 행동변화가 없는 심성변화는 그 누가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며, 그것이 언제 일어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반론을 제기합니다. 문제해결의 답은 원장에게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심성변화에 의한 바른 행동변화의 일정표나 발달진전 상황을 수시로 부모에게 제시하고 그것이 원의 교육프로그램에 의해 계획된 변화임을 설명하여 주어야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제대로 하는 유아교육기관이나 원장들이 거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발표력이 부족한 유아는 웅변학원에 보내면, 얼마 다니지 않아 큰소리를 탁상을 후려치면서 씩씩하게 열변을 토해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또래 앞에 나서서 연설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을 보인다고 하여 이 유아의 발표력이 향상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치원생활이나 가정생활, 놀이터생활에서 웅변하듯이 탁자를 치며, 큰소리로 외쳐대면서 대화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일상생활에서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의 말을 경청하거나 남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고 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올수도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을 원장이 학부모에게 잘 설명하는 그런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의 그 어떤 부모도 자신의 자녀가 앵무새처럼 생각없이, 감정없이, 의미없이 맹목적인 행동이나 언어를 구사하기를 갈망할까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전문가인 유아교육종사자들이 부모들에게 이를 잘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노력이 전무하다는 데 그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봅니다.
Ⅵ. 자녀의 속사정 알아주는 부모가 되자.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부모라면 다부모인가 부모다워야 부모이지!!! 』 이 말은 자녀들이 부모를 향한 절규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유아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들은 그 사람이 바로 부모였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물질적 풍요보다, 생활적 편리함보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수용해주는 다정다감한 부모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한결같이 현대 유아는 잘 훈련받고 잘 교육받은 부모를 가질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주변에는 변화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준비하지 않고 부모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일상의, 가정의 삶에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황금을 다준다고 하더라도 너와 바꾸지 않겠다.”라고 말하면서, 자녀가 부모를 위해 컵에 물을 운반하다가 실수로 몇 천원짜리 유리컵을 박살내면, 그 순간 돌변하여 온갖 악을 쓰며 자녀를 질타하는 것이 우리부모의 참모습이 아닌가요? 농담조로 “이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다.”라는 어느 어린이의 푸념처럼, 현대부모의 지혜가 이 수준이 되어서는 결코 대한민국 호는 글로벌대해를 순탄하게 향해할 수없다고 봅니다. 스위스의 세계적 유아교육학자인 삐아제는 “항상 어린이이 머릿속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파악하라.”라고 하면서, 그것이 바로 유아교육의 첫출발점이고, 그것이 바로 한유아를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시키는 요체라고 갈파하였답니다. ♥끝♥
2009년 6월 1일
컬럼니스트 이 영석 박사